음악/크레식음악

[스크랩] 쇼팽 `빗방울 전주곡`/ Raindrop Prelude (Martha Argerich, Pinao )

원재연 2012. 8. 6. 09:44

 


Preludes Op.28 No.15

in D flat major 'Sostenuto'

쇼팽 '빗방울 전주곡'/ Raindrop Prelude

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

collect & bring write-shomron


Martha Argerich, Pinao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이 작곡한 24개의 전주곡(24 Preludes, Op.28)의 15번째 곡의 별칭이다. 쇼팽 자신은 이 전주곡들에 따로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

이 곡들이 유명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이 곡들에 다양한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15번은 누구나 '빗방울'이라 불렀다.

이 곡의 왼손의 반주가 반복하는 음울한 음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전주곡이 24개가 된 이유는 모든 조를 다 썼기 때문이다. 그 점은 바흐의 전주곡과 같다.

다른 점은 바흐는 전주곡에 푸가가 붙어 있고 반음씩 올라가는 순서로 배열했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독립적이며 완전5도씩 뛰어 5도 원(circle of fifths)을 그리는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24개의 전주곡이 발표되었을 때, 곡들이 너무 짧고 구조적이지도 않아 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곡들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지, 지금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명곡이 되었다.


 


1836년 쇼팽은 마리 다구 백작부인(프란츠 리스트의 연인으로 둘 사이에서 태어난

코지마는 당대의 명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이혼하고 바그너의 부인이 된다)이 연 한 파티에서

유명한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만났다.

상드는 쇼팽보다 6살 연상이었고 아이 둘이 있었다. 상드는 쇼팽을 모성애적인 애정으로 돌보았다. 당시 쇼팽은 폐결핵이 깊었고 상드도 관절염을 앓고 있어

파리의 겨울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간 곳이 스페인령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Mallorca)이다.

그런데 막상 1838년 11월 초에 섬에 도착해보니 기대와는 달리 날씨가 좋지 않았다.

숙소도 마땅한 곳이 없어 폐허가 된 발데모사 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

악천후로 급기야 쇼팽은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은 관계였으므로

가톨릭 신자인 주민들은 불륜이라며 눈을 흘기고 수군댔다.

또, 파리에서 쇼팽의 피아노를 가지고 오는데 세관에 묶이는 바람에

피아노를 찾게 된 것은 섬에 도착한 지 5주나 지나서였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여러 가지로 우울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상드와 두 아이들이 외출하고 쇼팽이 숙소에 남아 있을 때 마침 비가 왔다.

쇼팽은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상드를 생각하며 이 곡을 지었다고 한다.

 

 

마요르카에는 1839년 2월 중순까지 머무르다 결국 나쁜 날씨로

쇼팽의 건강이 더 악화되자 그들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요양을 하게 된다.

그때 힘들게 찾은 피아노도 팔아버릴 정도였으니 그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마요르카에서의 나날은 힘들었지만 쇼팽의 많은 곡들이 여기서 작곡되어,

이때가 쇼팽의 작곡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빗방울 전주곡뿐 아니라 24개 전주곡의 나머지 곡들도 대부분

마요르카에서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의 ‘전주곡’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녹음하고 싶어 하는 명곡이다.

알프레드 코르토(1934, EMI)의 탐미적인 연주는 쇼팽 해석의 고전.

마르타 아르헤리치(1975, DG)의 연주는 극적인 흐름이 인상적.

마우리치오 폴리니(1974, DG)의 연주는 섬세하고 투명한 음색을 잘 드러내고,

그리고리 소콜로프(1990, Naïve)의 연주는 자유로운 해석과 낭만적 열정이 돋보인다.


두 개의 무덤을 가진 쇼팽

쇼팽의 왼손

 

 

파리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

파리에서 3번 지하철을 타고 강베타라는 역에서

내리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숲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파리의 명물인

페르라세즈(Père Lachaise) 공동묘지다.

공동묘지를 보기 위해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페르 라세즈뿐일 것이다. 작곡가 비제와 가수 에디 피아프, 화가 들라크루아와 피사로, 소설가 발자크와 유고, 배우 이브 몽탕과 시몬 시뇨레 등

왕년의 프랑스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 쇼팽, 마리아 칼라스, 로시니,

이사도라 덩컨, 그리고 미국의 팝 가수 짐 모리슨 등 프랑스인이 아닌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페르 라세즈에 잠들어 있다.

39세에 세상을 떠난 쇼팽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식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유해는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심장만은 폴란드 바르샤바 교외

크라쿠프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남쪽 크라쿠프 교외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은 1655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파괴된 것을 1679~1696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에 우뚝 솟은 2개의 쌍둥이 첨탑은

그보다 훨씬 뒤인 1760년에 완성된 것이다.

금과 은을 많이 사용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성 십자가 성당은 이 지역 출신 쇼팽의

심장이 묻혀 더 유명해진 곳으로,

심장은 본당 중앙의 왼쪽 돌기둥 아래 묻혀 있다.

쇼팽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히고, 쇼팽의 여동생이 파리를 방문해 겨우 심장만을 가지고 돌아와 이 교회에 안치했다고 한다.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의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쇼팽의 이름이 쓰인 커다란 기둥을 볼 수 있는데, 그 기둥 아래에 묻혀 있다.

지금도 쇼팽의 심장이 묻힌 돌기둥은 언제나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출처 : 우리들에 중년의 쉼터
글쓴이 : 정든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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