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일제 강점기 말기에 ‘고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목차
1. 들어가기
2. 잡지 『문장』의 탄생 배경
3. 잡지 『문장』의 편집상의 특성
4. 잡지 『문장』이 지향하는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5. 나가기
1. 들어가기
일제 강점기 말기, 1939년 2월에 잡지 『문장』창간호가 발간되었다. 문장지가 드러낸 편집상의 특성과 미학적 취향 그리고 정신적인 지향성에 김윤식은 ‘상고주의’로 파악했고 김용직은 전통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상고주의의 사전적인 뜻은 ‘옛적의 문물을 숭상하며 모범으로 삼는 주의’이다. 전통주의는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문화의 정신과 양식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보수적인 경향’이다. 민족주의는 ‘독립이나 통일을 위하여 민족의 독자성이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문장』파 예술가들이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은 그들이 일제 강점기 속에서 독립을 꿈꾸며 우리 민족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고전의 연구와 배포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문장지가 창건된 당시의 시대상과 문학 예술가들의 동향 그리고 그들이 표명한 입장을 세심하게 따져보며 『문장』파 예술가들이 지향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2. 잡지 『문장』의 탄생 배경
1930년대 말은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이 생존의 방향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하던 시기였다. 1930년대 초의 카프의 탄압과 해체를 경험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내적으로 위축되었는데, 소위 순수시운동과 산문에서의 9인회의 등장이 겉으로 드러난 하나의 상징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외적 정세는 점점 더 악화일로를 걸었다.
식민지 확대에 광분하던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 하였다. 군수공업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재편성을 강행하였는데 상품과 원료의 배급제, 상공업에 대한 허가제, 그리고 긴급하지 않은 평화 산업에 대한 억제책을 실시하면서 한국민에 대한 미곡, 생우의 공출을 강요하여 군량에 보충했고, 심지어는 고철, 놋그릇, 수저까지 공출케 하여 군수물자에 보태었다.
일제는 모든 민족적인 문화 활동을 금지하였으며, 한국어 사용마저도 금지하여 민족적인 얼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폈다. 미나미 조선 총독은 내임한 지 2년 뒤인 1938년에 신교육령을 발표하여 중등학교 교과목 중에서 한국어를 삭제하여 한국어 교육을 금하고 나아가서는 한국민의 한국어의 사용까지도 금지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조선인들은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조직이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사주 김연만과 편집책임자 이태준의 의기투합이 이루어져 잡지 『문장』이 탄생되었다.
발행인 김연만은 “자신이 공부한 것도 문학이 아니고 현재의 생활도 문학이 아니지만 예술에 대한 존경과 서적에 대한 관심은 이미 가져온 지 오래 되었고 힘만 자라면 어느 각도에서나 좀 진취적인 문화행동을 갖고 싶던 것이 나의 적년의 소회였다”고 했다.
한편 편집자인 이태준은 “일전의 어느 회석에서다. 누가 조선의 문화를 알려함에 정기출판물들의 수효를 물었다. 한 친구는 무엇 무엇하고 다섯 손가락이나마 얼른 꼽지 못해 구구하였고 한 친구는 이속의 문화는 과거에 있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방패매기를 하였다. 아무튼 현간의 문예지 하나 갖지 못한 문단임엔 너머 얼굴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문장』이 오로지 그런 일시 의분으로서만 탄생됨이라 함은 아니나 그로 말미암아 출세하는 시일을 단축시킨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하여 당시 문예지 하나 없는 참담한 현실이 잡지 『문장』의 창간을 자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3. 잡지 『문장』의 편집상의 특성
『문장』은 각 분야를 나누어 몇 사람이 편집을 주도해 나간 것으로 보여 진다. 즉 소설은 이태준, 시는 정지용, 시조와 고전 발굴소개는 이병기로 영역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김용준은 길진섭과 더불어 잡지 『문장』의 장정과 표지화를 주로 담당했다.
우선 『문장』은 장정에 상당한 배려를 하였다. 장정의 책임을 맡은 서양화가 길진섭은『문장』 제 3집의 ‘여묵’에서 “우리의 문학이라면 우리의 장정, 우리의 표지가 창조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우리의 색감과 우리의 정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상고주의와 전통주의의 색채를 표명했던 『문장』의 편집진은 제자부터 완당 김정희의 필체를 사용하여 미학적 특색과 고풍을 되살렸고 표지화의 대다수를 그린 김용준을 통해 민족적 색감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다. 완당의 제자는 처음에는 행서체였으나 제 5호 부터는 이태준이 한 달 가까이 애써 필적을 찾아내어 예서체로 바꾸었고 김용준은 산수, 화훼, 소과, 기율 등을 소재로 문인화 양식의 고상하고 품격 높은 필치를 구사하였다.
『문장』은 순수문예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전과 학술분야에 상당한 지면을 배정하였다. 우선 창간호부터 이병기 주해로 한중록을 연재한다. 이러한 고전소개는 한중록, 도강록, 호질, 인현왕후전, 고시조선, 서대주전, 토별가, 고가사 이편, 요로원야화기, 춘향전이본집등으로 이어진다.
또 국학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전문학(민속학 포함)과 국어학 그리고 고미술분야의 논문과 평론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창간호부터 이희승의 조선문학연구초, 양주동의 근고동서기문선, 김용준의 이조시대의 인물화, 신윤복과 김홍도, 최북과 임희지, 회화적 고민과 예술적 양심, 한묵여담, 오원일사, 조선어학회의 외래어표기법, 봉산가면극 각본, 손진태의 무격의 신화, 조윤제의 조선소설사 개요, 설화문학고, 이병기의 조선어문학 명저 해제, 정인승의 고본 훈민정음의 연구, 최현배의 한글의 비교연구, 고유섭의 완월당 잡식, 신세림의 묘지명, 거조암불정, 인왕제색, 인재 강희안 소고 등을 게재하였다.
이렇듯 『문장』은 『인문평론』이 서구 문예이론을 도입하는데 주력했던 것에 비해, 우리의 국학을 수용하고 고전적이고 전통지향의 편집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4. 잡지 『문장』이 지향하는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잡지 『문장』의 독특한 특성과 지향성에 상고주의로 파악한 김윤식은 그 문학사적 위치를 고전부흥운동의 맥락 속에 두었으며 선비다운 맛과 고전에의 후퇴라고 정리하였다. 황종연은 “1930년대 후반기 문학의 전통주의는 한국학의 성장을 통해 강화된 전통의식과 서양추수주의적 근대주의에 대한 회의적 결합형태”라고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였다. 최승호는 『문장』의 편집진 중 이병기의 정신적 지향성에 몰두하여 “선비문화에의 지향과 문인화 정신의 추구”로 해석하였으며 “사실 ‘문장파’의 이념인 선비문화에의 지향은 이병기(제1세대), 정지용(제2세대)에서보다도 그 마지막 세대(제3세대)인 조지훈에 와서야 그 극점을 보인 것이다.”라고 파악하였다.
사실 잡지 『문장』의 편집진들이 추구한 지향점은 광포한 군국주의와 포악한 민족정신의 말살정책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정치색에 맞선 ‘전통주의적 정신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과거로의 회귀나 퇴영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하여 실학과의 ‘법고창신’과 ‘탁고개제’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자신들의 전통지향이 도피적인 안주와 문화적 퇴행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추진동력을 얻기 위한 전통의 본질과 의미를 찾는 이념운동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것은 한편으로 난세극복의 혜안일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민족문화사의 단절을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민족의 시련기에 고고성을 울리며 창간되었던 잡지 『문장』은 1941년 4월호로 폐간되었다. 약 2년 2개월 동안 26호를 발간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한국언론사』에는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2월 13일에는 신문 사업령을 , 12월 18일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임시 취제법을 공포했다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팔봉 김기진은 “일제 암흑기의 문단”에서 “『문장』과 『인문평론』이 일본 문으로 절반 이상 인쇄하지 않고서는 발행이 안 되게 된 것이 41년 11월부터 이니까 이때부터가 직접적으로 문단을 덮친 암흑기라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증언하였다. 일제에 의해 조선이 암흑기로 접어들기까지 최후에 남아서 민족적 정서를 지킨 잡지가 『문장』이었다는 점에서 『문장』의 문학사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민족지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마저 폐간 당한 현실에서 『문장』의 편집진은 총독부로부터 일본문으로 된 글만을 게재할 것을 강요당하면서까지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가 스스로 폐간을 자초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5. 나가기
백철은 『국문학전사』에서 잡지 『문장』을 “일제 말기의 한국문학의 교두보”라고 극찬했다. 잡지 『문장』이 신인작가 시인들의 등용문이었고 그 당시 등장한 시인들은 1935년 전후의 그들보다도 더한층 현실을 경원한 ‘순문학주의적 경향’으로 되어 진 사실을 명료하게 살펴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연현은 그의『한국현대문학사』의 한 항목에서 잡지 『문장』의 위상을 “일제 말기의 문학적 민족적 등대”라고 표현하였다. 편집자의 문학적 안목이 높았으며 신인추천제를 설치하여 새로운 작품이나 새로운 신인이 문단의 문학적인 최고 권위자들에 의해서 심사되고 발견되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그 위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당시 총독부의 검열에 의해 수많은 글들이 삭제되거나 잘려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폐간 될 수밖에 없었을 때의 편집진들과 문학가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절대로 타협할 수는 없었던 그들의 민족의식과 절개에 찬사를 보낸다.
참고문헌
박태상, 『정지용의 삶과 문학』, 깊은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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