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졸업논문은 왜 쓰는가?
졸업논문은 대학 4년간의 전공 공부를 총결산하는 것이자, 졸업을 위한 마지막 관문입니다. 그래서 졸업논문을 대학 공부의 ‘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학부 졸업논문을 필수적으로 부과하지 않는 대학이나 학과도 없지 않으나, 우리 학과의 학문 특성상, 졸업논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논문도 엄연한 논문입니다. 학생 개개인에 따라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적어도 대학 졸업 자격에 합당한,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내용을 담아야 하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막연한 생각, 주관적인 생각을 마치 수필을 쓰듯이 써 놓은 것은 논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단순히 모아놓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기존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도 타당한 근거에 기반을 둔 의견을 신중히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부 졸업논문에서 연구논문에 적용되는 모든 조건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졸업논문은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이 방면의 공부를 해 나갈 학생들에게는 학문적인 자세를 가다듬는 시험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과목 지식을 종합해 보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논문을 쓰는 방법은 하루아침에 체득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학문을 하면서 많은 논문을 쓴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논문의 형식에만 좀 더 익숙할 뿐, 구체적인 내용을 쓰는 데 있어서는 똑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고심을 합니다. 사실 오히려 더 많은 고심을 하지요. 그 누구도 쉽게 논문을 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미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한 우리 학생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졸업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허투루 했는지 뼈저리게 느꼈고, 졸업논문을 쓰고 나서야 공부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노라고.
2. 무엇을 쓸 것인가?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뭔가를 쓰기는 써야 하겠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지요. 거기에 대한 해답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알려줄 만한 주제가 있으면 제가 쓰지 남에게 주겠어요? 주제 선정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공부이고 첫 번째 관문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논문 주제를 잡았으면 이미 반 이상 끝난 것입니다.
졸업논문 공고가 나고, 논문계획서를 제출하는 기간 동안, 무엇을 써야할지 정하지 못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우리학교 학생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대학 다니는 동안, 주어진 강의 내용만을 달달 암기해왔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잘 보고 평점을 높게 받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적은 안 좋아도 뭔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공부한 학생이 훨씬 더 주제를 잘 잡습니다.
학기 중에 제출하는 과제물은 졸업논문을 쓰기 위한 연습 과정입니다. 그런데 과제물을 받아서 읽어보면 그 내용에 창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오직 정해준 주제에 대하여 교과서, 온라인강좌의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 짜깁기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과제물 문제를 내면, 어떤 참고문헌을 봐야 하느냐? 몇 장을 써야 하느냐? 하다못해 본문 글자 크기를 얼마로 해야 하느냐는 등의 정말 한심한 질문까지 쏟아집니다. 자율성이나 창의성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게 과연 대학생이 하는 질문인지, 초등학생이 하는 질문인지, 어떤 때는 저 스스로도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도저히 논문을 쓸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학과에서 예시한 졸업논문 주제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학생이 태반입니다. 예시는 예시일 뿐, 그 주제로는 결코 좋은 논문을 쓸 수 없다고 저는 단언합니다. 예시된 주제는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남의 옷이 어찌 자기에게 맞겠습니까? 한물간 유행의 기성복에 억지로 몸을 맞추려 하지 말고, 자기 몸에 맞게 옷을 맞추어 입으십시오.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가 없으면, 우선 다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그 동안 전공 공부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적어도 그 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있어야 논문을 쓸 수 있습니다. 게으른 학생 숙제하듯이 억지로 끌려가서는 좋은 논문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해당 과목을 공부할 때 교과서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부분, 또는 교수의 강의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부분에 주목하십시오. 교재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거나 교수가 자신 있게 강의한 부분은 이미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그에 대한 결론도 대체로 난 것들입니다. 교과서의 문면 또는 교수의 강의 가운데,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논문 주제를 찾으십시오. 물론 시험에는 안 나왔겠지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학문에서 중요한 분야, 중요하지 않은 분야란 애당초 없습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분야입니다.
3. 어떻게 쓸 것인가?
논문을 쓸 주제를 정했으면, 관련 자료를 모아야 합니다. 자료라고 하면 우리는 주로 문헌 자료를 말합니다. 문헌자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같은(또는 유사한) 문제를 다룬 이전의 논문이나 저서이고, 또 하나는 논문이 다루는 현상과 관련되는 사실을 담고 있는 자료입니다. 앞의 것을 연구 문헌, 뒤의 것을 자료 문헌이라고 부릅니다.
국어학 분야에서 중세국어를 연구한다면,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등과 같이 당시의 언어를 포함하고 있는 문헌이 자료문헌이고, 중세국어에 대해 현대의 연구자들이 쓴 논저가 연구문헌이 됩니다. 현대문학 분야에서 채만식의 작품을 연구한다면, 그의 작품인 <레디메이드 인생>이나 <치숙> 등과 같은 소설이 자료문헌이 되며, 채만식이나 그의 문학에 대한 비평이나 연구서 등이 연구문헌이 됩니다.
이 가운데 연구 문헌을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얼마나 시간을 들여서 발로 뛰고 품을 파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가만히 앉아서 인터넷만 뒤져서는 좋은 자료를 모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우선 교과서에 실려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보십시오. 해당 분야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연구 논저가 실려 있습니다. 제목을 보고 논문 주제와 관련이 있겠다 싶은 논저를 찾으십시오. 그 논저 뒤에는 더 자세한 참고문헌이 실려 있습니다. 또 거기에서 논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 같은 기존 논문을 찾으십시오. 사실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지만, 하다 보면 끝이 보입니다.
논문 자료를 찾을 때, 모든 자료를 다 찾아놓고 논문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합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대목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진도가 안 나갑니다. 자기 논문에서 필요한 부분 정도만 이해해도 됩니다. 읽고 나서 또 다른 논문을 찾고 또 읽고 또 찾아 읽다 보면 자신이 처음에 막연히 생각했던 주제에 대해 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저절로 주제가 좁혀집니다. 글쓰기로 말한다면, 처음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가주제이고, 그에 대한 공부를 깊이 있게 하면서 구체화된 것이 참주제입니다.
학생들의 논문계획서를 받아 보면 10명 중에 8, 9명은 주제가 너무 큽니다. 아마도 지도교수로부터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것이 주제가 너무 크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제가 큰 것은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국어의 격조사 연구”라든가 “경상방언에 대한 연구” 등의 제목을 제출하는 학생은 논문과 관련된 자료를 전혀 찾아보지 않은 학생입니다. 이런 제목은 적어도 박사학위논문 또는 학술저서에나 합당한 것입니다.
졸업논문은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대략 100매 정도가 적당합니다. A4 용지로 하면 13~15매 정도 되겠지요. 일반 학술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정도의 분량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분량에서 깊은 내용을 다루려면 당연히 주제는 좁아야만 합니다. 주제가 크면 교과서나 그 외의 개론서의 수준을 넘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논문 제목만 봐도 그 논문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논문을 쓰는 사람은 주제를 크게 잡습니다. 이 정도의 큼지막한 주제는 되어야 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또한 그래야 자기가 많은 공부를 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좁은 주제로 논문을 쓴 사람이야말로 진정 넓게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주제가 좁아도 그 속에는 해당 주제에 대한 주변적인 사실이 녹아들기 때문입니다. 땅을 깊게 파려면 처음에는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문제는 넓게만 파다가 깊이 파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경우이겠지요.
초보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실수는, 열심히 한다는 의욕만 앞세워 해당 주제에 대한 기존의 논문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한 논문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연구사 논문을 쓰는 경우라면 몰라도, 모든 논문의 내용을 다 고려하다가는 영원히 논문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상태를 “자료에 치인다”고 합니다. 기존 논문의 필자들은 적어도 여러분들보다는 학문적으로 한 수 이상 위인 사람들입니다. 읽다 보면 그 논리에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자료가 너무 많은 것이 자료가 없는 것만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존의 논문을 선별해서 참고하십시오. 사실 기존 논문 가운데는 학생들에게 약이 되는 것도 있지만, 독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을 구별해주는 것이 지도교수의 몫이기도 합니다. 학생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에는, 저명한 학자의 논문을 우선하고, 많이 인용되는 논문을 우선하십시오.
4. 덧붙여
졸업논문에 관한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만, 아마도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학생들은 인용법, 각주 달기, 참고문헌 작성법에 목을 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주변적인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1학년 2학기 <글쓰기의 기초>에 보면 그 방법이 상세히 잘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면서 그대로 따라해 보십시오. 한두 번 해보면 누구나 금방 익숙해집니다.
몇 해 전엔가 졸업논문 작성법에 대해 영상강의를 한 것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 정보마당- 자료실- 자료실바로가기- 졸업논문작성가이드]에 가 보십시오. 국어국문학과에서 조남철 선생님, 박태상 선생님 그리고 제가 한 영상강의를 모두 VOD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내용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강의를 하였습니다. 졸업논문을 쓰는 학생은 물론, 앞으로 졸업논문을 쓰게 될 재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강의한 부분의 강의노트는 제 홈페이지 자료실에 [2003년 졸업논문OT 영상강의 요약]이란 이름의 텍스트 파일로 올려져 있습니다. 강의를 시청할 때 함께 보시면 편리할 것입니다. 학과 홈페이지 학생게시판의 공지란에 보시면 [손종흠지도 졸업논문 심사 소감]이란 제목의 손종흠 선생님 글이 올려져 있습니다. 언제 읽어도 찌릿찌릿한 느낌이 올 정도로 진솔하고 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꼭 읽어 보십시오.
이미 한참 전에 졸업한 여러분들의 선배가 그러더군요. 졸업하고 나니 교과목으로 배운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이상하게도 졸업논문에서 쓴 내용만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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