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

[스크랩] 서정주 詩 모음

원재연 2017. 5. 4. 14:26

국화 옆에서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서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닢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네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었나보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걸, 슬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학(鶴)


天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나른다.


天年을 보던 눈이
天年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한번 天涯에 맞부딪노나


山덩어리 같아야 할 忿怒가
草木도 울려야할 서름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선이,
보라, 옥빛, 꼭두선이,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은 보자.


누이의 어깨 넘어
누이의 綏틀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을 보자.


울음은 海溢
아니면 크나큰 齊祀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쭉지에 묻을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땐들 골라 못추랴.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속을
저, 우름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 다하지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나른다.

 

 


모란 그늘의 돌


저녁 술참
모란 그늘
돗자리에 선잠 깨니
바다에 밀물
어느새 턱 아래 밀려와서
가고 말자고
그 떫은 꼬투리를 흔들고,
내가 들다가
놓아 둔 돌
들다가 무거워 놓아 둔 돌
마저 들어 올리고
가겠다고
나는 머리를 가로 젓고 있나니......

 

 


禪雲寺 洞口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읍니다.

 

 

입마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石榴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山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
달드라.

 

 


대낮


따서 먹으면 자는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强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손에 받으며 나는 쫒느니


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 몸이 달어...

 

 

피는 꽃


사발에 냉수도
부셔 버리고
빈 그릇만 남겨요.
아주 엷은 구름하고도 이별 해 버려요.
햇볕에 새 붉은 꽃 피어 나지만
이것은 그저 한낱 당신 눈의 그늘일 뿐,
두번짼가 세번째로 접히는 그늘일뿐,
당신 눈의 작디 작은 그늘일 뿐이어니......

 

 


가을비 소리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가을에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低俗저속에 抗拒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잎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雁行안행-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菊花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白露백로는 霜降상강으로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즘어진 구름은
이제는 楊貴妃양귀비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開闢개벽은 또 한번 뒷門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질마재의 노래


세상 일 고단해서 지칠 때마다,
댓잎으로 말아 부는 피리 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히는 나를 부르는
질마재. 질마재. 고향 질마재.


소나무에 바람 소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님 마을.
지붕 위에 바가지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요?
칡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요?
솔바람에 이 숨결도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를리요?

 

 

 

벽(壁)


덧없이 바라보던 벽에 지치어
불과 시계를 나란히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아닌


꺼져드는 어둠 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정지한 '나'의
'나'의 설움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 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아.


 

 

내 永遠은

내 永遠은
물 빛
빛과 香의 길이로라.


가다 가단
후미진 굴헝이 있어,
소학교 때 내 女先生님의
키만큼한 굴헝이 있어,
이뿐 女先生님의 키만큼한 굴헝이 있어,


내려 가선 혼자 호젓이 앉아
이마에 솟은 땀도 들이는
물 빛
라일락의
빛과 香의 길이로라
내 永遠은.

 

 


첫사랑의 詩


초등학교 3학년때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깍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밑에 놓아 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포그은히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 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 이야기 작은 이야기들이 오부룩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山도 山도 靑山도 안기어 드는 소리, ......

 

 

밤이 깊으면


밤이 깊으면 淑숙아 너를 생각한다. 달래마눌같이 쬐그만 淑숙아
너의 全身전신을,
낭자언저리, 눈언저리, 코언저리, 허리언저리,
키와 머리털과 목아지의 기럭시를
유난히도 가늘든 그 목아지의 기럭시를
그 속에서 울려나오는 서러운 음성을


서러운서러운 옛날말로 우름우는 한마리의 버꾸기새.
그굳은 바윗속에, 황土황토밭우에,
고이는 우물물과 낡은時計시계ㅅ소리 時計의 바늘소리
허무러진 돌무덱이우에 어머니의時體시체우에 부어오른 네 눈망울우에
빠앍안 노을을남기우며 해는 날마닥 떳다가는 떠러지고
오직 한결 어둠만이적시우는 너의 五藏六腑오장육부. 그러헌 너의 空腹.공복

뒤안 솔밭의 솔나무가지를,
거기 감기는 누우런 새끼줄을,
엉기는 먹구름을, 먹구름먹구름속에서 내이름ㅅ字자부르는 소리를,
꽃의 이름처럼연겊어서연겊어서부르는소리를,
혹은 그러헌 너의 絶命절명을

 

 


무제(無題)


마리아, 내 사랑은 이젠
네 後光후광을 彩色채색하는 물감이나 될 수 밖에 없네.
어둠을 뚫고 오는 여울과 같이
그대 처음 내 앞에 이르렀을 땐,
초파일 같은 새 보리꽃밭 같은 나의 舞臺무대에
숱한 男寺黨남사당 굿도 놀기사 놀았네만,
피란 결국은 느글거리어 못견딜 노릇,
마리아.
이 춤추고, 電氣전기 울 듯하는 피는 달여서
여름날의 祭酒제주 같은 燒酒소주나 짓거나,
燒酒로도 안 되는 노릇이라면 또 그걸로 먹이나 만들어서,
자네 뒤를 마지막으로 따르는-
허이옇고도 푸르스름한 後光을 彩色하는
물감이나 될 수 밖엔 없네.

 

 

쑥국새 타령(打鈴)


애초부터天國천국의사랑으로서
사랑하여사랑한건아니었었다
그냥그냥네속에담기어있는
그냥그냥네몸에실리어있는
네天國이그리워竊盜절도했던건
아는사람누구나다아는일이다
아내야아내야내달아난아내
쑥국보단天國이더좋은줄도
젖먹니가나보단널더닮은줄도
어째서모르겠나두루잘안다
그러니딸꾹울음하고있다가
딸꾹질로바스라져가루가되어
날다가또네근방달라붙거든
예살던情分정분으로너무털지말고서
下八潭上八潭하팔담상팔담서옛날하던그대로
또한번그어디만큼묻어있게해다오

 

 

춘향 유문(春香 遺文)
-春香의 말 參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맞나든날
우리 둘이서 그늘밑에 서있든
그 무성하고 푸르든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것입니다


천길 당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래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되야 퍼부을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거에요!

 

 


찬 술


밤새워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가나니
한 수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늙은 사내의 詩


내 나이 80을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깍어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깍어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깍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은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달래자
마음달래자 마음달래자

 


석류꽃


춘향이
눈썹
넘어
광한루 넘어
다홍치마 빛으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무주 남원 석류꽃을...


석류꽃은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구름 넘어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우리는 뜨내기
나무 기러기
소리도 없이
그 꽃가마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나니...


 


신 부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
郞하고 첫날밤은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
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
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면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
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
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제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
아 버렸읍니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 ㅅ살과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하네.


오-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銀河은하 ㅅ물이 있어야 하네.


도라서는 갈수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織女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 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섭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七月칠월 七夕이 도라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織女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소곡(小曲)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
아- 미치게
짓푸른 하눌.


나, 항상 나,
배도 안고파
발돋음 하고
돌이 되는데.

 

 


가벼히


애인이여
너를 맞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나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새이
절깐을 ?더래도
가벼히 한눈 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어 놓고 가려한다.

 


기다림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 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지나간 小滿의 때와 맑은 가을날들을
내 이승의 꿈잎사귀, 보람의 열매였던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섭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뻐꾸기는 섬을 만들고


뻐꾸기는
강을 만들고,
나루터를 만들고,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것들은
나룻배에 태워서 저켠으로 보낸다.


뻐꾸기는
섬을 만들고,
이쁜 것들은
무엇이든 모두 섬을 만들고,


그 섬에단 그렇지
백일홍 꽃나무 하나 심어서
먹기와의 빈 절간을......


그러고는 그 섬들을 모조리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만 길 바닷속으로 가라앉히곤
다시 끌어올려 백일홍이나 한 번 피우고
또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편지


내 어릴 때의 친구 淳實이.
생각히는가
아침 山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추韆)의 그리움을?


그리고 淳實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 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淳實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淳實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 沙場에 앉아 그 소슬한 翡翠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
갓트인 蓮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

 

 


곶감 이야기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 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주셨네.
"도깨비 서방얻어 호강하는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시월이라 상달되니


어머님이 끊여 주던 뜨시한 숭늉,
은근하고 구수하던 그 숭늉 냄새.
시월이라 상달되니 더 안 잊히네.
평양에 둔 아우 생각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잊히네, 영 안 잊히네.


고추장에 햇쌀밥을 맵게 비벼 먹어도,
다모토리 쐬주로 마음 도배를 해도,
하누님께 단군님께 꿇어 업드려
미안하요 미안하요 암만 빌어도,
하늘 너무 밝으니 영 안 잊히네.

 

 


꽃피는 것 기특해라


봄이 와 햇빛속에 꽃피는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피는것 기특하여라.

 

 

 

노을


노들강 물은 서쪽으로 흐르고
능수 버들엔 바람이 흐르고


새로 꽃이 ? 들길에 서서
눈물 뿌리며 이별을 허는
우리 머리 우에선 구름이 흐르고


붉은 두볼도
헐덕이든 숨 도
사랑도 맹세도 모두 흐르고


나뭇닢 지는 가을 황혼에
홀로 봐야할 연짓 빛 노을.

 

 


行進曲 - 행진곡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앍안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거드면 저무는 하늘.
이러서서 主人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끔 ㅅ식 醉취해가지고
우리 모두다 도라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亂打하여 떠러지는 나의 종소리

 

 


추일미음(秋日微吟)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문둥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출처 : 문학(文學)과 서예(書藝)를 좋아하는 사람들....
글쓴이 : 海松 김태옥 원글보기
메모 :

'김소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지용 詩 모음  (0) 2017.05.04
[스크랩] 박두진 詩 모음  (0) 2017.05.04
[스크랩] 이육사 시 모음  (0) 2017.05.04
[스크랩] 노천명 시  (0) 2017.05.04
[스크랩] 박목월 詩 모음  (0) 2017.05.04